추억 발명가 김기찬의 골목사진

 

심효윤(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렌즈에 담긴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

   

그 골목에 들어서면 연탄 냄새가 난다. 김치찌개와 밥 냄새가 난다. 언제든 골목에 가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사진작가 김기찬(1938~2005)1968년부터 2001년까지 33년간 골목 안의 풍경을 기록했다. 어떻게 그의 사진에서 고향 내음이 느껴질까. 어떻게 사진 속 아이들의 왁자지껄 웃어 대는 소리가 내 귀에 울리는 것일까. 그의 사진 속에는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가 담겨있고 따뜻한 인정이 배어있다.

 김기찬은 서울의 중림동과 인근 지역 골목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렌즈에 담았다. 사진학계에서 그의 작품은 다큐멘터리 사진의 진수로 꼽힌다. 시대의 정신을 담아 강력한 메시지를 작품에 전달하려기보다 작가 자기 생각을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민족지(ethnography)적인 기록을 했다는 평이다.

 그의 사진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기록물이자 역사물로 간주된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보는 것(seeing)이 아니라 이미지를 읽을(reading image) 가치가 있다. 같은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골목안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그대로 관찰하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의 30년 성과는 피사체인 골목안 사람들과 친밀감이 쌓였기에 가능했는데, 대상자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작가가 동네 사람들과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만년에 그는 과거에 자신이 찍었던 사람들을 이산가족 찾듯이 찾아다녔다. 그에게 골목안 사람들은 단순히 하나의 대상이자 소재가 아니었다. 인류학자가 말하는 진정한 라포(rapport)였다.

 

쌍둥이 합치기 2.png

쌍둥이 소녀의 모습 

서울 중림동 골목에서 만난 쌍둥이다. 작가는 시간 경과에 따른 변화를 촬영했다.

(왼쪽부터 1927. 7 서울 중림동, 1976. 8. 서울 중림동, 1982. 8. 서울 중림동, 1999.6. 서울 충정로, 2001.8. 서울 중림동/재개발된 아파트)

   

 

잃어버린 풍경을 기록하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진 아카이빙

   

김기찬의 사진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사진 아카이빙 프로젝트에서 수집한 컬렉션으로, 한국의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른 환경 변화를 기록한 역사적 기록물이다.1) 골목 안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공동체의 모습, 모여 살기, 골목문화의 풍습과 일상, 그리고 고도의 경제성장과 도심 재편으로 상실하고 해체되어 가는 공동체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작가의 사진 약 1만여 점의 원본인 35mm 네거티브 필름과 컬러 슬라이드 필름을 선별하여 디지털 스캔하고, 아카이브 이용자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자료를 체계적으로 분류했다. 디지털화 작업이 완료된 이미지는 현재 ACC 아카이브에 기증되어 보존되고 있다.

    

 뻥튀기 장수.png

골목안 풍경(1975. 7.)

뻥튀기 장수와 귀를 막고 바라보는 아이들의 사진이다.   

  

  

사라진 골목, 넘쳐나는 아파트

 

아파트 단지에서 태어나 살아가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아파트 인류가 탄생했다. 이는 고도성장 목표의 국가 전략에서 나온 시대적 산물이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빠르게 주택을 공급하고자 아파트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얼마간 유용해 보였다.

 하지만 아파트는 주거라는 본래 기능을 넘어 자산증식, 투기, 욕망의 상징이 되었는데, 거래 가격이 더 중요한 상품으로 간주한다. 오늘날 우리는 정주자가 아니라 아파트 입주 공간의 소비자일 뿐이다.

 새로운 인류의 욕망에 힘입은 재건축과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인해 친구, 동네, 추억, 돌아갈 고향까지 잃은 사람들이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누군가에게는 생존의 터전)까지 빼앗긴 이들도 적지 않다. 도시 개발은 마을의 기억과 역사를 몰아냈고, 우리 사회는 가난그 자체를 줄이는 법을 강구하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몰아내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아파트 단지 밖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모두 무관심해졌다.

 이렇게 지우고 없애는 것에 무감각해진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대대적인 공사로 건물이 올라설 때마다 문화적인 공간은 파괴되고, 골목 곳곳에 켜켜이 누적된 역사적인 공간도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뼈저린 후회를 통해 우리는 마을(공동체)의 역사는 돈으로는 절대 보상할 수 없다라는 교훈을 얻었다.

 그래서 김기찬은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끝까지 카메라로 붙잡으려 했는지 모른다. 그의 작품에는 압축성장을 통하여 진통을 겪어 온 서울의 근대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숨 가쁘게 달리다 보니 그간 놓쳤던 우리네 삶의 체취가 남아 있다.

  

재개발과 골목의 미래, 서울 만리동.png

서울 만리동 골목안 풍경(1981. 3.) 

재개발 현장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노인. 반대편에는 서울의 고층빌딩 마천루가 보인다. 노인은 마치 골목의 미래를 걱정하는 듯하다. 

    

 

골목, 동네, 그리고 모여 살기 

 

김기찬의 골목 사진이 아름다워 보인다면, 그것은 동네가 존재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정주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흔적 속에 깃들여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진 속 세상은 사람들이 골목에 머물러 살던 시대였다. 한동네에 정주하며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아마도)서울의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까.

 김기찬의 사진 속 등장인물들은 비록 초라한 동네라도 골목안 사람들끼리 서로를 아끼며 미래를 함께 꿈꾸는 것처럼 보인다. 어려웠던 날들의 추억이랄까, 그래서 재개발된 동네와 골목안 사람들은 행복해졌을까. 우리는 도심의 발전이 인간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길은 아니라는 슬픈 결말을 이미 알고 있다. 그 많던 골목길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동네는 사라지고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골목길 잃어버린 풍경.png

신문지 위의 아이들(1976. 5.) 

길가에 신문지만 깔아도 아이들은 행복했다. 아이들은 골목에서 함께 놀고, 숙제도 하며, 간식을 먹었다. 골목길을 자동차에게 빼앗겨버린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풍경이다. 

 

 우리는 김기찬이 남긴 골목길을 살펴보고, ‘모여 살기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골목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공동체, 도시, 사회의 모습이란 무엇인지를 같이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 도시의 미래는 공동체를 품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소통하고 교류하고 두 발로 걷고 싶은 도시가 되어야 하며, 그래서 사라졌던 동네의 풍경을 되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인간관계의 회복이 우선이다. 그의 작품이 우리에게 참된 거주의 의미를 재고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가 동네를 만들지만, 동네 또한 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1) 위탁사업 과제명 '아시아문화정보원 아시아의 사진 아카이빙 콘텐츠 조사 연구'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간 추진되었다(책임연구원: 한금현). 김기찬 외에도 김한용, 강봉규, 이경모 등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기록한 대표적인 원로 사진작가들의 자료를 디지털화하고 메타데이터를 작성했다.
 
 
  
심효윤(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