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정보
실크로드 흑장군의 전설
개체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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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어
실크로드 흑장군의 전설
대등명
黑水城, Legend of Khara Bator in the Black City, Kara Khoto
비대표어
수레 여덟 대 분의 보물과 함께 검은 모래폭풍 속으로 사라지다
존립/생몰/발생
미정
연혁/약력/사건개요
사라진 역사(전설) ■ 흑성은 중국 측 역사에서 ‘서하(西夏)'라고 부르는, 그러나 자기들 스스로는 그 옛날 하(夏)나라의 적통을 이어받았노라 주장하던 ‘대하(大夏)'의 최전방 요새였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그 성의 성주는 단 한 번의 패배도 몰랐다 할 만큼 뛰어난 장수였다. 사람들은 늘 검은 갑옷을 입고, 검은 투구를 쓰고, 검은 칼을 차고, 검은 말을 타고 다닌 그를 일러 흑장군이라 하였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검은 바람이 일었다. 그러나 서하 황제의 야심이 지나쳐 중국 황제의 권력마저 넘보려 하자, 중국 황제는 대군을 보내 서하를 치게 했다. 흑장군은 흑성을 중심으로 중국의 엄청난 대군을 맞아 싸워야 했다. 여러 차례의 격전 끝에 흑장군은 성안에 포위되고 말았다. 하지만 성이 워낙 높아 더 이상 진공이 어렵다고 판단한 중국군은 성으로 들어가는 에친골의 물길을 돌려놓음으로써 흑성의 숨통을 조였다. 천하의 흑장군이라도 더 이상 버티는 것은 무리였다. 그는 자기와 동족에게 다가올 운명을 예감하고 먼저 가족을 부른다. 가족들은 아버지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다. 노예로서의 굴욕적인 삶과 장군의 가족으로서의 명예로운 죽음 중에서 그들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한다. 결국 흑장군은 두 아내와 세 딸의 목을 자기 칼로 베었다. 그는 남은 두 아들과 함께 마지막 일전을 불사한다. 성을 빠져나가기 전 흑장군은 성안에 있던 보물들을 우물에 파묻으라고 명령한다. 총 수레 여덟 대나 되는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마지막 군대를 이끌고 정면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그건 이미 싸움이 아니었다. 살인이고 도륙이었다. 흑성의 병사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전멸했다. 그리고 성안에 남아 있던 대하인들도 마찬가지 운명을 피하지 못했다. 성을 점령한 중국들은 보물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었지만, 아무리 찾아도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어쨌거나 무너진 흑성 위로 카라부란, 사막의 검은 모래폭풍은 해마다 몇 차례씩 몰아쳤다. 그리하여 언제부턴가는 주변 부족의 뇌리에서도 흑성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까마득히 사라졌다. 1908년, 코즐로프(Pyotr Kuzmich Kozlov) 대령이 이끄는 러시아 탐험대가 중국 북방에서 마르코 폴로의 행로를 더듬다가 발견하기 전까지는. ■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과 전설의 재구성 1. 흑장군의 전설에 나오는 중국군대는 실제로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 군대였다. 기록에 따르면, 칭기즈칸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와 성을 함락시켰다. 2. 칭기즈칸은 전투 중 말에서 떨어져 전사한 것이 아니라, 바로 독을 묻힌 흑장군의 칼에 등을 베여 그 상처가 덧나서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실제로 대하가 멸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칭기즈칸이 전사했다. 3. 흑장군이 죽고 흑성이 함락된 뒤 중국 군인들은 혈안이 되어 보물을 찾았다. 그러나 성 안에 어디에서도 보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흑장군이 죽으면서 그것을 찾을 수 없게 주문을 걸어놓았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4. 흑장군의 가족 중 딸 한 명이 성이 함락되기 전 이방인 사내하고 성을 빠져나가 살아남았다는 말도 있다. 5. 1908년 코즐로프 탐험대는 사막의 아득한 모래 위로 거대한 요새도시가 솟아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것이 바로 전설 속의 흑성이었다. 탐험대는 실제로 강의 물줄기를 돌려놓기 위해 쌓은 둑의 흔적도 발견했다. 코즐로프는 총 3,500점의 유물을 훔쳐갔다. 그것들은 현재 에리미타쥬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다. 이 유물들은 운 좋게도 제2차 세계대전 레닌그라드가 포위당했을 때도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6. 『실크로드의 악마들』에 나오는 고대 유물에 대한 체계적이고도 노회한 약탈자 중 한 명인 저명한 고고학자 오렐 스타인(Aurel Stein)도 1913-1916년 제3차 중앙아시아 답사때 흑성 유적지를 다녀갔다. 이후에도 쟁쟁한 고고학자이자 역시 유물약탈자들인 랭던 워너(Langdon Warner)가 1925년에, 스웨덴의 전설적인 탐험가 스벤 헤딘(Sven Hedin)이 1927-31년에 흑성을 다녀갔다. 7. 흑장군이 마지막 결전을 펼친 게 아니라 가족을 죽이고 자신도 자결했다는 주장도 있다. (위키피디아)
소재지/국적/발생장소
고비사막, 알랴산
국가 1
중화인민공화국
등장인물
*흑장군: 몽골어로 카라 바타르(Khara Bator: 검은 영웅이라는 뜻)라고도 한다. 대하의 장군. *칭기즈칸
특기사항
■ [소개] - 사막 한가운데 우뚝 솟은 황금지붕의 성채여∼: <대전일보> 2007년6월 30일자. - 고비사막엔 '전설의 보물성'이 있다 [해외리포트] 찬란한 문명을 남기고 사라진 탕구트 제국 서하 출처 : 고비사막엔 '전설의 보물성'이 있다 - <오마이뉴스> *絲路傳說 흑성자(黑城子, Heichengzi) ■ [해설] Khara-Khoto - 흑성 유물들(1227년 이전 유물들) - The Alashan ■ Aurel Stein, Innermost Asia: Detailed Report of Explorations in Central Asia, Kan-su and Eastern Iran. Oxford, England: Clarendon Press., 1928. ■ 서하(西夏) - 서하(西夏)는 티베트계 탕구트족(Tangut, 党项族)의 왕조로서 1032년에서 1227년까지 주로 중국 북서부의 간쑤성(甘肅省), 알라샨, 오르도스에 위치했다. 전성기에는 북으로 고비 사막, 남으로 난주, 동으로는 황허, 서로는 옥문에 이르는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국교는 불교였고 문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되었고 한자에서 파생된 서하 문자를 가지고 있었다. 칭기즈 칸의 서정(西征) 참가를 거부하여 1227년 칭기즈 칸의 몽골군에 의하여 멸망하였다. 서하를 점령한 칭기즈칸은 대대적인 민족 학살을 실시했는데, 이는 서하의 저항이 끈질겼기 때문에 칭기즈칸을 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 국영 CCTV의 보도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서하인을 매우 철저하게 살육해서 거의 멸족시켰기 때문에 현재까지 서하인의 후손을 발견하기 어렵다고 한다. - Ethnic Consciousness Seen Through the Letters: Khara-Khoto and Western Xia Characters 文字が語りかける民族意識:カラホトと西夏文字
활용사례
■ [소설] 이은숙, 『쉐도우-스타테이라의 검』, 높은오름, 2008. - 판타지 모험소설. 전설 속 알렉산더 대왕의 '황금의 검'을 찾아 나선 해성과 유미가 중국과 일본, 타클라마칸 사막, 카시카르와 투르단을 배경으로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그린 판타지 모험활극. 칭기즈칸의 서하 정벌 때 죽음을 예견한 서하의 왕이 황금의 검을 흑장군에게 맡기고, 흑장군은 그 검을 수레 여덟 대 분의 보물과 함께 우물 속에 숨기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내용 설정. ■ [음악] 喜多郎 生命の泉~絲綢の路~黑水城の幻想
다른기관 관리 정보
김영종, 『실크로드 길 위의 역사와 사람들』, 사계절, 2009. pp.21-44. 김영종, 『반주류의 실크로드사』, 사계절, 2004. (위와 동일한 내용) 김영종,『 티벳에서 온 편지』, 사계절, 1999. 중 「사라진 왕국을 은천에서 만나다」 피터 홉커크 저, 김영종 역, 『실크로드의 악마들』, 사계절, 2007. pp.288-291. 이근명, 『동북아 중세의 한족과 북방민족 (최근 중국 학계의 연구동향과 그 성격)』 , 동북아역사재단, 2010. 송옌 저, 이현아 역, 『보물이 숨긴 비밀 (미궁에 빠진 보물을 둘러싼 45편의 기록)』 , 애플북스, 2009. 黑城遗址的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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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 연계정보
이 정보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2011~2012년 추진한 '아시아 스토리 현황 조사 및 자원 발굴 사업'을 통해 선정된 200대 스토리 중 하나입니다. 동서의 문명이 끊임없이 오고간 실크로드를 주류의 시선이 아니라 비주류, 혹은 소수자의 시선으로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칭기즈칸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흑수성의 흑장군 전설은 이런 소수자의 시선을 대표하는 설화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역사와 가공의 전설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흥미를 더욱 유발한다.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이야기의 원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