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로 보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을 기억하는 여정

 

강슬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얼마 전 유현준 건축가가 국내에서 볼만한 건축물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선정하고 소개했다. 건축물과 건축물이 만들어 내는 공간은 콘텐츠와 사람을 담는 그릇으로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는 건축물로 시선을 돌리고, 관심을 환기시킨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건축물을 기억하는 방법으로 설계 기록 아카이브를 선택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계 기록'이 아카이브로 보존되기까지의 과정을 공유하고, '기억'의 실제와 증거로서 아카이브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이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한다.       

  

 

미래 세대에 남겨줄 대상의 발굴과 선별 : 수집

공공시설의 건축 설계 기록은 설계 과정과 공정의 실제를 알려주는 근거이자 건축가의 아이디어와 건축적 해석, 설계 개념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보존의 당위성이 있다. 특히, 문화전당 설계 기록은 문화도시 조성이라는 국책사업의 핵심기지이자,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과 이를 새로운 가치로 승화하고자 했던 기관의 설립 취지를 설계에서부터 충실히 반영했다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4년 문화전당은 건축 설계 기록을 아카이브에 추가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우규승 건축가와 협의를 통해 아카이브 대상을 선별하는 작업을 거쳤다. 선별이 끝난 후 건축과 기록관리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자료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통해 수집 타당성을 검토했다. 수집 당위성이 충분함에도 이러한 절차를 거치는 이유는 한정된 예산, 인력, 보존 공간을 고려해 영구히 보존해야 할 대상을 선정하는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절차이자, 이것이 아카이브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계 기록의 수집이 확정되자 기록의 생산 맥락이 유실되지 않도록 기초조사를 진행하고, 이후 미국에 있는 우규승 건축사무소에서 국내로 운송을 시작했다. 20159월 우규승 건축가와 설계 기록 일체에 대한 기증협약을 체결하면서 1년여에 걸친 수집 활동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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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극장 설계 스케치(트레이싱지)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

(좌) 극장의 형태와 객석의 배열, (우) 대극장의 주 구조체와 지붕 및 천장과의 관계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스케치다.  

    

 

보존과 활용을 위한 밑그림 : 정리와 기술

분류체계 없는 분류

기록이 수집되어 기관으로 반입되는 시점부터 아카이브로 보존을 위한 일련의 업무들이 시작된다.

아카이브에서 정리archival arrangement는 '출처provenance'와 '원질서original order존중'의 원칙에 따라 기록을 배열하고, 보존상자 편성과 편철, 레이블 부착 등 물리적 질서를 잡는 과정을 의미한다. ‘정리는 도서관과 박물관의 분류와 차이가 있다. ‘분류가 주제·시기·유형·용도 등 속성을 기준으로 출처를 넘나들며 기록을 모은다면 정리는 기원과 출처에 따라 집합적이고 수직적으로 기록을 관리한다. 이러한 배경에는 기록이 생산된 맥락을 의미있는 정보로 설정하여 기록의 가치를 높이고 이해를 돕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생산 일자를 파악할 수 없는 메모가 하나 있다고 치자. 이 메모의 생산 시기를 추정하는 단서는 같은 출처 안에서 전후 기록을 대조하고 비교하는 방법이 유일하다. 정리의 질서가 견고하다면 누군가는 생산 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여러 아카이브 기관이 정해진 분류체계로 기록을 분류하지 않는 이유이다.

 

설계 기록의 정리와 기술(記述) 

문화전당 설계 기록은 질서를 잡아가는 것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였다. 건축 설계는 절차와 과정이 명확하고 단계별로 생산되는 기록의 유형이 고정적이다. 우규승 건축사무소에서도 이를 고려하여 기록을 보관하고 있었다. 따라서 설계 순서와 기록의 유형을 토대로 스케치, 모형, 도면(과정도면/과정도면 위 스케치/최종도면), 사진(설계/공사), 행정 서류철 등으로 기록의 집합을 구성하였다.

다음으로 기록의 내용을 추출하는 '기술description과정을 거친다. 이는 기록의 정보를 나열하는 것 이상으로, 이용자가 효과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검색 도구를 만드는 종합적인 업무이다.

문화전당 설계 기록은 수집에 참여했던 연구진이 문화전당 설계 프로젝트의 감독으로 참여한 이력 덕에 선과 도형으로 가득 찬 스케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술이 가능했다. 마지막 단계로 실물의 기록을 디지털로 변환하고, 아카이브 관리시스템에 정리 결과와 기록의 디지털 사본을 등록하는 과정을 거쳤다. 2년여의 정리 과정의 결과로 아카이브 홈페이지에서 우규승 건축가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설계 기록을 검색하고 열람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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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 

(좌) 아카이브관리시스템에 아카이브의 모든 과정을 기록한다., (우)아카이브 수장고  

 

과거의 시간을 멈추는 과정 : 보존

설계 기록 중 건축모형은 설계 검토와 연구의 결과를 지속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수정이 용이한 폼보드를 주 재료로 사용하여, 강도가 약해 손상 부위가 더러 존재했다. 10년 가까이 활용되면서 먼지와 오염 등 시간의 흔적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특히 25천여 평의 대지 위에 64백여 평의 건축물을 축적 1:100으로 축소한 탓에 장변이 6m에 달했다. 문화전당으로 이를 반입하기 위해 대형 크기의 모형을 작은 모듈로 분해했다.

문화전당에 반입된 이후 보존과 공개를 위해 모듈의 재조립이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내부 지지 골조를 보강하고, 탈락된 피스의 고정과 유실된 피스의 추가도 함께 진행됐다. 조립과 보수는 끝났지만 이 모형은 우리가 주택 전시관이나 홍보관에서 접하는 모형만큼 깨끗하고 현란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모형은 설계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다른 기록이 설계의 특정 단계에서 생산되어 그 목적을 달성한 후 완성된 결과물로서 존재한다면, 건축 모형은 설계의 시작부터 완결까지의 전 과정에서 검토, 연구, 확인, 설명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이 모형이 10년 가까이 진행된 문화전당 건립의 시간을 함축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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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계 현장에서 건축모형은 설계의 내용을 적용하고 검토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

(좌) 2007년 3월 30일, (우) 2017년 7월 25일, 우규승 건축사무소

 

아카이브 여정은 계속 된다.  

건축물은 준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변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역시 크고 작은 변화를 거치며 8년의 시간을 보내왔다. 내적으로는 전시·교육·공연·축제 등 프로그램에 맞추며 다른 공간과 분위기로 변모했다. 외적으로도 크고 작은 시설의 보수를 통해 변화가 있었다. 2021년에는 이용자의 접근이 쉽도록 하늘마당 앞으로 에스컬레이터를 추가했다. 또 구 도청 별관도 복원을 앞두고 있다. 구 도청 별관의 복원이 완료되면 문화전당은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문화전당 설계 기록은 2014년 준공 당시의 기억을 담아 아카이브로 영구히 보존된다. 그리고 변화의 순간을 담은 기록 역시 아카이브로 축적되어 미래에 다시 기억되고 회자되는 과거로 남을 것이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일, 이것이 우리가 아카이브를 지속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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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현준 유튜브 채널 캡쳐 이미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건립아카이브실의 '건축 스터디 모형' 앞에서 준공 이후 새로 추가된 시설과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강슬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