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호수와 사람, 그리고 전통의 유산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자 두번째로 큰 호수인 인레(Inle)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따족(Intha)의 삶. 인레 호수의 어부 다큐멘터리 스틸컷.png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자 두번째로 큰 호수인 인레(Inle)에 순응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따족(Intha)의 삶. 


새벽녘 물안개가 드리우면 백색 호수와 대지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이 호수는 하늘과 맞닿아 신비함을 연출한다. 인레(Inle)는 미얀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이자 두 번째로 큰 호수이다. 바다와 같은 거대한 호수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인따족(Intha)의 삶 그 자체가 나는 문화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선조는 자연과 공존하는 법을 가르쳐 왔다. 호수와 함께 할 때 그들은 진정한 인따족이 된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옳은 삶을 살고 있는가. 당신은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상당히 인문학스러운 질문 가운데, 오늘은 이렇게 기초적이지만 중요한 물음에서 시작한 연구 프로젝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아시아문화연구소는 2016년부터 ‘아시아의 전통지식과 무형문화유산’을 찾기 위해서 현지조사와 영상기록 사업을 병행하고 있다. 소위 ‘아시아’라고 구분된 지역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아시아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가 간의 연대, 문화예술의 교류, 혹은 과학과 기술의 협력 등, 이 모든 것들의 주체는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인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시아라는 땅 위에 선조들이 무엇을 남기려고 했으며, 어떻게 인간다움을 교육해 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을 가늠할 수 있는 나침반이 있는데, 그것은 주로 국제기구(주로 유네스코)나 국가에 의해서 등재된 문화유산이다.
 
각각의 전문가들이 정해진 가치판단의 기준을 놓고 등재여부를 심사한다. 이러한 선정 과정을 거쳐 인류가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할 문화유산이 세계 곳곳에 등재되어 왔다. 연구소는 이 중에서 몇몇을 선별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였다. 첫 시리즈는 중앙아시아 4개국을 다룬 ‘위대한 유산 중앙아시아’로 2017년 10월에 방영되었고, 두 번째는 미얀마, 필리핀, 캄보디아 배경의 ‘위대한 유산 동남아시아’가 올해 7월에 한국교육방송공사(EBS)에서 방영되었다.
 
다큐멘터리 소재의 선정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이 따랐다. 지금 시점에서 우리에게 이 문화유산에 대한 논의가 왜 필요한가. 이를 테면, 미얀마 인따족의 수상생활과 전통시장을 조사하면서, 글로벌 기업이 장악한 현재의 시장 구조에 대해서 생각해 볼 문제라고 판단하여 촬영을 했다. 

 

무려 2000여개의 상점이 서는 낭 빤 시장(Nam Pan)에는 대대적인 교환이 이뤄진다. 산속에 사는 빠오(Pa-O)족은 채소와 과일을 들고 오고 수상족인 인따족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판매한다..jpg

무려 2000여개의 상점이 서는 낭 빤 시장(Nam Pan)에는 대대적인 교환이 이뤄진다.

산속에 사는 빠오(Pa-O)족은 채소와 과일을 들고 오고 수상족인 인따족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판매한다. 

 

 
인레는 미얀마 샨(Shan)주 나웅쉐(Nyaung Shew)에 있으며, 해발고도 880미터 고원지대의 호수로 산에 둘러싸여 있다. ‘호수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인따족은 그곳에서 어로활동과 수경재배를 하며 살아간다.
 
이 마을에서 만난 대장장이 우 쎄인(U Sein) 할아버지는 주로 칼을 만들지만 호수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인 배에 들어가는 부품도 제작한다. 바로 전통 나무배를 만들 때 연결하는 이음새이다. 선박장인이 나무를 다듬고 나서, 대장장이가 만든 부품을 연결해야 배를 완성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배를 타고 어부는 물고기를 잡으러 나간다. 낚시는 주로 그물과 통발을 사용하는데, 필수품인 통발은 대나무 공예가가 만든다.
 
정리하면, 수상마을에는 쇠를 담금질하는 대장간에서 전통배를 제조하는 조선소로, 그리고 대나무를 조각하는 공방에서 호수의 어부로 연결되는 지역 중심의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다. 마을뿐만이 아니다. 오일장날 좌판까지 포함하면 무려 2천여 개의 상점이 서는 낭 빤 시장(Nam Pan)에는 대대적인 교환이 이뤄진다. 산속에 사는 빠오(Pa-O)족은 채소와 과일을 들고 오고 수상족인 인따족은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판매한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공산품을 사고, 온라인으로 구매를 하며, 제품이 망가지면 A/S센터에 가거나 새 제품으로 교환하는 것이 익숙한 우리에게, 혹은 공정과정에 대한 정보도 부재하고 관심조차 없는 것이 당연한 우리에게, 대형마트가 없는 그들의 삶은 매우 불편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불편함에서 오는 인간과 인간의 문제 속에서 관계의 즐거움이 발생한다. 구매자와 소비자의 관계가 단절된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레의 전통 시장경제가 신선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바다와 같은 거대한 호수에 순응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사는 ‘인따족의 삶’ 공존하는 법을 그들 선조는 가르쳤다. “당신은 인간답게 스스로 만족하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묻는다.
 
민족의 자부심이 녹아든 공예기술로 마을을 발전시키고 지속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제시한 사례도 있다. 수상마을에서 대나무공예센터를 운영하는 우 쩌 제야(U Kyaw Za Ya) 씨는 조상에게 배운 지혜와 경험의 기술을 전수받고 본인이 가진 손재주를 활용하여 공예품을 디자인한다. 중요한 것은 그가 한 달에 두 번씩 산간 마을로 출장교육을 다닌다는 점이다. 대나무가 무성해 자원은 풍부하지만 기술이 없어서 부수익을 창출할 줄 모르는 부족을 찾아가 교육을 나눈다.
 
대나무 한 그루를 베서 시장에 내다팔면 한화 2천원 남짓 받았는데, 공예품을 만들고 난 뒤로 한 그루 당 많게는 10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 무려 50배의 수익이 생긴 것이다. 도로도 뚫리지 않은 산간 마을에 이제 세계 곳곳에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는 개인만의 성공이 아니라 사회의 한 일원으로 고민하면서 활동을 한다고 했다. 본인이 갖고 있는 기술을 남에게 전수하는데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어려운 취업과 구직 이후에도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하루를 사투하며 지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레호수의 안따족들은 선박장인과 대장장이, 대나무 공예가의 손을 거친 선박과 통발을 이용해 어로활동을 한다. 사진은 통발 사웅 ..jpg
인레호수의 안따족들은 선박장인과 대장장이, 대나무 공예가의 손을 거친 선박과 통발을 이용해 어로활동을 한다.(사진은 통발 사용)  

 

이렇듯 전통 그 자체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적합한 정보와 지식을 축적해 나가는 진화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전통은 시대변화에 발맞춰 발전해 가야하며 시대마다의 진동은 요구되는 법이다. 그럴 때마다 새로운 안내자가 필요하다. 후대에게 세상을 열어주기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
 
심효윤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 《전남일보》 2019년 8월 2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