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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에 의해 명명된 이름, 토라자

  • 작성자기획콘텐츠 담당자
  • 날짜2019-11-09

인도네시아는 자바, 발리, 술라웨시 등 18,108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인들은 스스로를 누산따라(Nusantara)라 표상하기도 했다. 이는 제도(諸島) 즉 여러 섬으로 이루어진 섬나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는 말이다. 한편으로 섬이 갖는 폐쇄성은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크고 작은 섬 각각에 독자적인 문화를 갖는 집단들을 형성하기도 했다. 역사상 인도네시아는 스리비자야나 마자파힛과 같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기도 했으나, 말레이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그 통합성은 높지 않았다.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18,108 섬 중 유인도는 6,000여 개다. 근대화 과정을 통해 많은 민족과 문화가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사용되는 언어는 700여 개, 독자적인 문화를 표방하는 종족은 300여 개에 달한다. 인도네시아는 그만큼 다양한 에스니시티(ethnicity, 종족성)가 존재하는 국가이다.

 

인도네시아를 이루는 다양한 종족 중 술라웨시섬의 고산 부족인 토라자(Toraja, 고산족)족은 통코난이라는 독특한 건축 양식, 계단식 논 경작, 이색적인 장례 풍습 등으로 이른 시기부터 대외적 주목을 받아왔다. 이들에 대한 관심은 타 지역의 그것과는 구분되는 독특한 에스니시티에 기반한 것인데, 토라자라는 말과 거기에 담긴 함의는 그들이 가진 실상보다는 외부인들의 굴절된 시선과 섣부른 관찰이 만들어낸 인상에 가깝다.

 

 께떼께수 마을, 일종의 전통마을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jpg

 께떼께수 마을, 일종의 전통마을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토라자 부족을 일컫는 토라자라는 말은 토라자 인의 것이 아닌 인접 부족 부기스 인의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이들 양자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16세기 마자파힛 왕조가 멸망하고 부기스 인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면서, 이 적대성은 더욱 강화된다. ‘토라자라는 단어 자체에 담겨 있는 정서는 일종의 구분이며, 더 나아가면 대상화’, 그리고 적대의식에까지 닿아 있다. 한편으로 이 말은 우리 역사에서 오랜 기간 쓰인 야인(野人, 여진족 등 북방민족)이라는 한자 표현과 유사하다. 일본의 에조(蝦夷, 에미시) 역시 이와 비슷한 정서와 감각을 담은 단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토라자 인들이 그렇게 불린 역사적 과정도 연구자에게는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단순히, ‘토라자는 부기스어로 고지대인을 뜻한다라고 읊고 지나가는 것은 성급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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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께떼께수 마을의 통코난, 앞뒤로 높이 치켜 올라간 지붕 모양이 이채롭다.

 

토라자는 그것의 오늘날 쓰임과는 무관하게, 토라자를 대표하지 않는다. 아울러 이 집단은 근대까지도 아주 파편화된 씨족 단위로 활동을 했고 각각의 문화는 매우 달랐다. 이는 그들이 기반한 술라웨시 중부 산악지대의 환경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언어적 특성만으로도 적어도 3개 이상의 다른 집단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대다수가 정착 농경민이었지만, 그 중에는 머리 사냥을 하던 집단도 있었다. 이는 대단히 야인스러운 측면이다. 이들이 토라자로 통칭된 것은 1909년 이후의 일이다. 하지만 통칭의 사유는 적절치 않았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술라웨시를 포함한 인도네시아를 지배한 네덜란드라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정책의 편의성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하이랜더 집단들은 이후 자체의 내적인 종족 기원 내러티브나 자기 표상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외적 명명에 의해 하나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라자로 통칭되는 집단 사이의 문화적 상이성은 여전하다.

 

식민지 사회가 끝나고 나서도, 이 고산 농경민들을 지칭하는 토라자라는 명칭은 철회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들은 타인들이 명명한 토라자라는 단어에 걸맞는 자기 위상을 갖기 시작한 듯하다. 그리고 그 명명을 자신들의 독자적 내러티브 속에 포함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아울러 토라자라는 단어는 인도네시아의 근대화가 진행되는 순간 속에서, 보다 빠른 속도로 타자화, 대상화되기 시작했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부기스 인이나 마카사르 인 등 해안 지역민들은 지정학적 유리함으로 인해 새로운 문물을 손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더불어 이들의 근대화는 이전까지는 시도하지 않았던 토라자 지역으로의 진출에 대한 자신감을 부여한 듯하다. 이 과정에서의 충돌과, 전근대성을 지닌 저항자의 모습은 토라자의 부정적 의미를 강화시켰던 듯하다. 그렇게 하여 이 고상한 농경민들은 야인으로 배척되고, 공격받았다.

    

토라자족의 장례식 풍경, 창과 방패를 든 인솔자 뒤로 제수로 쓰이는 돼지를 운반하는 장정들이 따르고 있다..jpg

토라자족의 장례식 풍경, 창과 방패를 든 인솔자 뒤로 제수로 쓰이는 돼지를 운반하는 장정들이 따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전환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바로 토라자인들의 개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전환은 부기스 인 등이 강요한 이슬람이 아닌 기독교로의 개종이어서, 그 현상은 문화적으로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들의 선택은 제국주의자들의 종교에 일체화되는 것이며, 그들의 정책에 적극 부합하면서 주변의 공격자들을 적절히 견제하는 것이었다. 덕분에 이들은 문화적 근대성보다 종교적 근대성을 더 일찍 받아들였고, 그 개종도 철저했다. 그 결과물이 조상숭배의 결정판인 토라자 인들의 알룩 토 돌로(Aluk To Dolo)와 습합된 기독교이다. 조상숭배의 의례 속에 소환된 기독교는 매우 이질적인 모습이지만, 아주 가까운 어느 시점부터 그들 사회에서 수용되고 정착한 종교 현상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재에도 토라자라는 이름의 야인들을 바라보는 부정적이고 편향된 시선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의 한 단면처럼 진행되고 있다. 예컨대, 이들에 대한 명명인 '토라자' 속에는 그러한 타자에 의한 명명과 자기 규정성,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성이 함께 담겨 있다.

 

배재훈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 《무등일보2018423일자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