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도이캄 사원에서 만나는 다양한 신(神)

 

태국 제2의 도시 치앙마이는 ‘북부의 장미’란 별칭답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도시이다. 번잡한 대도시 방콕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하면서 다양한 인프라와 즐길 거리가 있는 치앙마이는 오래전부터 여행자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치앙마이가 관광지로만 이름난 곳은 아니다. 14세기부터 18세기까지 태국 중부 지방에 아유타야 왕국이 존재했다면, 그보다 조금 더 앞선 13세기부터 북부 지방에는 란나 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태국은 하나의 나라이지만, 따지고 보면 지역별로 서로 다른 역사와 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치앙마이는 란나 왕국의 수도로서 7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태국 북부의 행정, 정치, 경제는 물론 종교와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치앙마이 일대엔 크고 중요한 불교 사원이 많이 있다. 

그중 첫손에 꼽히는 곳, 그리고 우리에게도 가장 잘 알려진 곳이 왓프라탓 도이수텝이다. 그러나 치앙마이 사람들에게 도이수텝 못지않게 중요하고 인기 있는 사원이 있으니 바로 왓프라탓 도이캄이다. 태국어 ‘왓’은 불교 사원을 말하며, ‘프라탓’은 불교의 가장 중요한 성물인 부처의 사리를 뜻한다. 즉, 태국에서 ‘왓프라탓’이란 이름으로 시작하는 사원은 불사리를 모시고 있다고 알려진 아주 중요하고 성스러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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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17미터에 달하는 좌불상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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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사리를 운반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도이캄 사원은 치앙마이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도이수텝 사원처럼 산 정상부에 자리하고 있다. ‘도이’는 북부 태국어(란나어)로 산을 뜻하는데, 그렇다면 이곳의 중요한 사원은 왜 산 위에 지었을까? 아주 오래전부터 이 일대의 토착신앙에서 주요 산은 도시를 보호하는 수호신 ‘아락 루엉’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후 이곳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각 성산(聖山)마다 사원을 건립했는데, 제도화된 종교인 불교가 기존의 토착신앙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섞이며 발전하고 전파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종교적 습합, 혹은 불교의 토착화 현상은 비단 태국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인데, 한국 사찰에 있는 산신각도 바로 그러한 결과물이다. 

도이캄 사원 경내에는 불교와 토착 민간신앙이 어울려 있는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사원 중앙에는 황금으로 덮인 쩨디를 둘러싸고 7개의 신당이 자리하고 있다. 신당이라고 해서 거창하고 화려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조악해 보일 수 있는 작은 집 모양의 구조물 내에 각종 신상을 안치하고 사람들이 기도를 올릴 수 있게 해놓은 곳이다. 

첫 번째 신당은 7~8세기부터 13세기까지 번성했던 태국 중북부 몬족의 왕국 하리푼차이(하리푼자야)의 첫 군주 짜마테위 여왕을 모시고 있다. 짜마테위는 태국 북부 일대에서 신격화되어 숭배되고 있으며, 도이캄 사원 역시 그녀가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 신당은 짜마테위의 아버지로 알려진 르씨 수텝이다. 이름 ‘수텝’의 어원은 힌두 신화에 등장하는 바수데바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언급한 도이수텝이란 지명이 바로 르씨 수텝에서 따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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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마테위 여왕 신당 (사진: 부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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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씨 수텝 신당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세 번째와 네 번째 신당은 이 일대의 선주민인 루아족(라와족)의 전설에서 유래한 할아버지 거인 수호신 뿌쌔와 할머니 거인 수호신 야쌔를 모시고 있다. 옛날 옛적 숲속에서 살던 거인들이 신선한 고기를 좋아해서 인간을 사냥하고 잡아먹자 부처가 이곳을 방문해 사람과 동물을 해치지 않도록 가르쳤다. 대신 거인에겐 물소를 바치기로 하고, 거인들은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며 이 지역을 보호하기로 하면서 인간과 거인 모두 행복하게 잘 살게 됐다는 것이 기본 줄거리이다. 이 전설에 따라 지금도 매년 도이캄 지역에서 뿌쌔와 야쌔를 위해 물소 희생제를 포함한 성대한 의식을 치르며, 이들을 모신 신당도 여럿 있다. 

다섯 번째 신당은 유명한 고승 루엉 뿌씨, 여섯 번째 신당은 루아족의 왕 위랑카를 모시고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위랑카가 짜마테위 여왕을 사모했지만 결국 사랑에 실패했고, 하리푼차이를 공격했으나 전쟁에서도 패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악인으로 그려지지 않고 신으로 모시는 것은 루아족에게는 추앙받던 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위랑카 신상은 창을 든 늠름한 모습이며, 당시 성인 남성이나 전사들이 새겼던 문신까지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신당에서 모시고 있는 존재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관음보살이다. 

이 일곱 신령은 역사 속 실존 인물부터 전설과 민담, 불교와 힌두교의 배경 속에서 등장하는 신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 특히, 관음과 고승을 제외하면 상당수가 방콕을 비롯한 태국 중부나 다른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북부만의 문화적 산물이다. 도이캄 사원에는 이밖에도 여러 불상과 신상이 자리하고 있다. 시바, 비슈누, 가네샤 등 힌두교의 주요 신은 물론 태국 민간신앙의 상상계 속 초자연적 존재나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도인도 존재한다. 태국의 불교 사원에서 힌두신이나 지방 수호신을 같이 숭배하는 것이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다양한 배경과 맥락을 지닌 여러 신령을 같이 모시는 장면은 보기 쉽지 않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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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네샤를 비롯한 다양한 신상이 함께 모여 있는 와불상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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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마테위 여왕의 황금 신상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도이캄은 불교가 도래하기 이전부터 지역 공동체에서 숭앙받던 장소여서 여러 신들을 모시고 있고, 많은 지역민들이 이곳을 찾아 기도를 하고 소원을 빈다. 특히 도이캄 사원은 탄짜이 불상을 모시고 있는데, 진정으로 원하는 것 한 가지를 말하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속설이 있다. 정말 소원이 이루어지면 이를 보답해야 하며, 이에 따라 흰색 자스민 꽃봉오리를 모아 만드는 푸엉말라이를 산더미처럼 한가득 쌓아 공물로 바치는 것도 이곳의 독특한 풍경이다. 

늘 미소를 잃지 않는 태국인들에게도 가장 바라는 소원은 결국 부자가 되는 것일까. 도이캄 사원은 복권에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로 늘 가득하다. 사원 입구에도 여느 다른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기념품점뿐만 아니라 복권 상점이 줄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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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박을 붙이며 소원을 비는 모습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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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물을 바치고 기도를 드리는 모습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탄짜이 불상 앞에 가득 놓인 푸엉말라이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

 

외지에서 온 여행자들에게 도이캄 사원은 치앙마이에서 가장 큰 좌불상을 비롯하여 거대한 와불상, 유행상(遊行像)과 산 위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경치로 유명하다. 그러나 도이캄 사원을 둘러싼 여러 역사적, 문화적 배경들, 그리고 사원 내에서 발현되는 태국인들의 기복 신앙과 주술적 믿음을 알게 되면 ‘관광지’를 넘어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불교 국가’라고만 알고 있었던 태국에서 실제로 종교적 관념과 실천 행위가 얼마나 다양하게 작동하는지, 더 나아가 여러 갈래의 종족과 배경을 지닌 이곳에서 각 요소들이 어떻게 서로 조화를 이루고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살펴보는 것 또한 태국을 이해하는 하나의 통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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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프라탓 도이캄 진입로 근처에 있는 뿌쌔와 야쌔 신당 (사진: 부경환)
  
 
  글 부경환  suasdei@gmail.com
 ​ 전, 아시아문화원 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원
  사진. 추티마 트리아라야퐁(Chutima Treearayapong), 부경환

이 글은 <전남일보> 2020년 4월 29일자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