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나는 고려인이다> 공동제작의 경험과 의미

 

전봉수(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2023년 봄, 정부의 재외동포청 신설이 가시화되면서 설립 논의가 한창이다. 수천 명의 고려인 동포가 모여 살고 있는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주민은 광주시와 함께 재외동포청 유치에 힘을 모았다. 한인동포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협력하여 중앙 행정기관을 유치하려는 노력은 이제까지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를 보여준 광주 고려인마을 주민들은 누구이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이들과 어떤 협력을 해왔을까?

 

고려인 이주 역사와 광주 정착

고려인 또는 고려 사람은 조선시대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한반도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이주한 후 구소련 일대에 살아왔던 한인동포들이다. 기록에 따르면, 이들은 1860년경 이후부터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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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해주로 이주한 초기 고려인의 주거(1985년 러시아 황실에서 편찬된 박물학 서적 '다채로운 러시아'에 실린 삽화),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관장 제공 

  

일제 강점 치하 독립운동 등 다양한 동기에 의해 러시아 연해주에 살고 있던 고려인은 1937년 소련정부의 결정에 따라 중앙아시아 일대로 강제이주를 당했다. 연해주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했던 이들의 서사는 우리민족의 아픔으로 기억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고려인은 이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에 이르는 중앙아시아 전 지역으로 이주한다. 하지만 1991년 소련 붕괴와 중앙아시아 다섯 나라의 독립으로 고려인의 삶은 큰 변화를 맞는다. 시장경제와 배타적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는 소수 고려인에게는 기회가 되었지만, 대부분에게는 위기로 다가왔다. 어떤 고려인은 일자리를 잃거나,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아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반면, 냉전 체제의 완화 덕분에 고려인에게 역사적 조국인 대한민국으로 이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국내에 입국한 고려인들이 귀환동포로 대접받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들의 체류지위는 외국인과 비슷했고, 얼핏 보기에는 외국인과 한국인 사이 그 어디엔가 끼어있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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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려인 집단농장의 토굴집(1954년).
강제이주 이후 10여년이 지난 뒤에도 일부 고려인들은 강제이주 당시 추위를 피하기 위해 파고 살았던 토굴과
똑같은 형태의 집에서 살았다. 김병학 월곡고려인문화관 관장 제공 

  

광주광역시 월곡동 일대에 중앙아시아와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고려인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무렵이다. 한 가족, 두 가족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고려인이 모여 사는 마을이 생겼다. 광주 고려인마을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 중 하나는 바로 오천 명이 넘는 고려인이 월곡동이라는 특정 지역에 집약적으로 거주하고 있다는 데 있다. 광주에 터를 잡은 고려인은 나주, 함평, 무안 등으로 밭일을 나가거나 거주지 인근 하남공단에서 쉽게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고, 1990년대 중반에 지어진 주택에서 비교적 저렴한 월세 생활을 할 수 있었다. 2013년 광주광역시 의회에서 제정된 <광주광역시 고려인 주민 지원 조례>와 더불어 광주 시민사회의 다양한 지원도 고려인의 정착을 도왔다. 여기에는 귀환 동포로서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겪는 고려인들에 대한 공감이 있었다.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 공연 <나는 고려인이다> 공동제작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을 맞이한 2017년 봄, 광주 고려인마을을 중심으로 광주시의 종교계와 시민사회분야 50여개 단체 그리고 150여명의 각계 인사로 구성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이하 추진위)’가 출범하였다. 추진위는 광주시민에게 고려인의 역사와 존재를 알리고 광주시민들이 고려인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전시, 공연, 포럼 등의 행사가 포함된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문화제를 기획하였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도 문화제의 공동 개최자로서 참여하였고, 주제 공연이였던 <나는 고려인이다>를 성공적으로 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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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2020년 아시아문화주간 개막공연 <나는 고려인이다> 장면 (우) 2017년 고려인 강제이주 80주년 기념공연 <나는 고려인이다> 장면 
 
문화전당은 <나는 고려인이다>의 공동 제작 과정에서 공연장 시설, 재원, 인적자원과 아카이브 자원을 광주 고려인마을 및 지역 소재 대학과 함께 공유하였다. 시설과 재원, 자원을 단순히 제공하는 방식이 아닌 고려인 이주 서사의 스토리텔링을 함께 구성하고, 공연에 사용되는 자료의 제공과 검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광주에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라는 문화 인프라가 있어요. (이러한 인프라가) 단순히 지역에 소재하고 있다는 것을 넘어, 

지역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그릇이라고 생각해요. <나는 고려인이다>는 대학과 지역, 문화전당이 협력하여

세계와 함께하는 기회창출의 장이자 새로운 시도였다고 봐요.”

-지역대학 관계자-

   

공연 <나는 고려인이다>는 문화전당이 유라시아 이주사의 살아있는 주인공인 고려인과 함께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지역 및 시민단체들과 협력하여 공동제작한 문화콘텐츠이다. 문화전당은 한반도에서 출발해 유라시아를 거쳐 다시 광주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소중한 자원으로 인식하고, 이 공연을 통해 이들의 삶의 조건이 보다 좋아지길 희망했다. 감사하게도 <나는 고려인이다> 공연 이후, 고려인 동포 3세대까지만 인정되던 동포 체류자격이 세대Generation와 상관없이 인정되는 방향으로 재외동포법 시행령이 개정되었다.

   

지금 문화전당은 우리민족의 민속음악 전승을 위해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했던 정추의 삶과 음악을 살펴보는 전시 <나의 음악, 나의 조국>을 개최하고 있다. 그는 광주에서 출발해 러시아를 거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정착하면서 고려인 가요 전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전문가의 관점에서 채록하였다. 우리는 민속학자이자 작곡가인 정추 관련 전시를 통해 유라시아 이주사의 살아있는 주인공인 고려인에 대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문화전당이 고려인 및 지역의 단체들과 협력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아시아문화의 살아있는 다양한 이들과 함께 문화콘텐츠를 제작하고 대중과 호흡하기를 기대한다. 문화가 사람을 살리고, 사람에게 희망이 되길 기대하는 것이다

  

 

전봉수(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