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망갈 쇼바자트라: 나은 삶을 위한 행렬'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배소정(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5월이다. , 어김없이 싱그러운 오월의 봄이 왔다. 사랑과 행복으로 충만할 것만 같은 5월이 어떤 이들에게는 그해 광주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가슴 아픈 봄의 달이기도 하다.

세월은 흘렀고, 80년 민주화의 봄은 43주년을 맞았다. 그해 광주를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해 1월 광주로 첫 발령을 받았을 때, 같이 근무하던 연구사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은 광주의 그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 내려가면 망월동에 가 인사드리면 좋겠다.” 

   

나는 망월동으로 향했다.   

 

202305221455380009.jpg 

망월동 5.18 구묘역. 계엄군의 무력진압에 쓰러진 사람은 129명.

이들은 수레와 청소차 등으로 실려와 1980년 5월 29일 합동 장례식으로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1. 사진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한국학중앙연구원 

     

망월동에서 묘지 하나하나를 둘러보고 난 후, 많은 사람에게 광주의 봄을 기억하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아마 사람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주로 기억하는 계기는 매년 열리는 5·18 민주항쟁 기념행사일 것이다.  5·18 기념행사는 그 형식과 내용이 꾸준히 발전하면서 우리가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는 중요한 행사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5·18 민주화운동을 새롭게 해석하면서 많은 사람이 폭넓게 공유하는 장이 필요하다. 단순히 역사적 사실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하나의 축제,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형태로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숙제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5·18 민주화운동을 기억하게 하고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까.

나는 망월동에서 느낀 5·18 기념행사에 대한 고민과 바람을 담아 연구를 시작했다.   

 

9aeaafe75a40ffea50bb146f67ec447e_1653381149_9605.jpg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 사진 5·18민주항쟁기념행사위원회.

 

먼저 518 기념행사의 배경과 상황을 공유하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례를 찾았다. 아시아에도 민주화운동이 일었던 나라들이 있다. 그중 방글라데시의 '망갈 쇼바자트라Mangal Shobhajatra' 축제를 발견했다. 

 

망갈 쇼바자트라 1.png

다카에서 열리는 망갈 쇼바자트라 축제 대규모 행렬

 

망갈 쇼바자트라는 벵골력 새해 첫날인 414, 즉 포헬라 보이샤크Pohela Boishakh에 펼쳐지는 축제다. 이 축제에는 대규모 행진이 벌어지는데, 문자 그대로 나은 삶을 위한 행렬이라는 의미가 있다.

망갈 쇼바자트라가 처음 시작된 때는 1989년이다. 당시 방글라데시는 1981년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후사인 모하마드 에르샤드Hussain Mohammad Ershad의 군사독재 하에 있었고, 1988년에는 온 나라가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1989년 다카에서는 독재정권의 타도와 재해민의 구호 기금을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이 봉기가 망갈 쇼바자트라의 첫 여정이었다. 망갈 쇼바자트라는 독재정권이 나라 전체를 억압하던 어두운 시기에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으로 나아가는 행진이었다.    

   

오늘날 망갈 쇼바자트라의 주요 목표는 이 지역에 뿌리내린 여러 민속 문화를 홍보하고 기념함으로써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단결을 도모하는 것에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종종 종교나 종파가 다른 사람들 간에 이념, 신념, 관습의 차이로 불화를 겪는 모습이 발견되다. 하지만 망갈 쇼바자트라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 행사 때만큼은 모두 하나가 되어 축제를 즐긴다.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망갈 쇼바자트라를 국민의 결속을 강화해 주는 축제라 여기는 이유다.

  

축제 합치기.png

   나이, 성별과 상관없이 누구나 즐기고 참여하는 망갈 쇼바자트라 축제의 모습 

  

망갈 쇼바자트라에서 주목할 점은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자발적 참여와 화합 그리고 비상업성에 있다.

망갈 쇼바자트라의 주최자는 다카 대학 미술학부 학생들과 교수들이다. 이들은 국가의 위기에 자발적으로 나서서 최초의 행진을 주도했고 현재까지 본질을 전수하며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축제 준비를 한 달 전부터 시작한다. 그림을 그리고 팔아 행진에 필요한 기금을 스스로 마련한다. 또 전년도 행진에 쓰였던 가면이나 장식물을 경매로 판매하여 수익금을 재정에 보탠다. 이 과정에서 장인도 참여한다. 그래서 망갈 쇼바자트라는 상업적으로 자유롭다. 주최자의 노력과 이를 지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열정은 망갈 쇼바자트라가 전 국민적인 축제가 되는데 일조한다.

 

과정 합치기-수정.png
다카 대학교 학생들과 교수들이 망갈 쇼바자트라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 
  

20161130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제11차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정부 간 위원회는 망갈 쇼바자트라를 무형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선정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망갈 쇼바자트라가 포헬라 보이샤크라는 오랜 역사를 지닌 벵골 전통의 일부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신분과 종교에 상관없이 참여하고, 사람들을 화합하게 하여 민주주의적 연대와 공유의 가치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망갈 쇼바자트라는 민주주의 부활의 통로가 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위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포용이다.

망갈 쇼바자트라는 이러한 포용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 행진은 사람들 사이의 이념종교적 장벽을 허물고 사회적 연대와 결속을 유도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사회문제에 대한 국민적 대응이 이루어져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 ACC 주제연구 보고서, 『5·18 기념행사와 벵골 새해 행렬』 , 2022 -

 

  

망갈 쇼바자트라 2.png

  

망갈 쇼바자트라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살리고 벵골인의 역사를 축하하며 정체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사는 지역과 사용하는 언어, 종교에 관계없이 전 세계의 모든 벵골인을 하나로 연결하여 무형문화유산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5·18 기념행사의 좋은 사례라 생각한다.  

  

광주의 희생과 항쟁으로 찾은 민주주의가 오늘의 우리 민주주의다

광주항쟁을 취재한 월스트리트 저널 노먼 소프 기자는 앞세대가 자유선거를 확립하고 민주주의를 꽃피우려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지금의 젊은 세대는 배우고 진심으로 감사하길 바랍니다고 말했다. 2)

 

우리에게도 오늘의 민주주의를 불러온 1980년 5월의 봄이 있다. 이 봄을 뜻깊게 기억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5.18기념행사가 사람들이 모여 화합하는 축제로 자리하길 바라본다.

 

* 망갈 쇼바자트라 사진 사이푸르 라시드 제공  

  

 배소정(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보고서(작은 사이즈).png 
 
 
참조·인용 

1) 포헬라 보이샤크는 무굴제국의 아크바르Akbar 황제 시기인 1556년 세금 징수의 날을 기념한 데서 기원해 오랜 역사와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새해 첫날 축제는 1965년 차이나트Chhaynat라는 문화단체 소속 예술가들이 애국적인 노래를 부른 데서 시작됐다. 민주화운동으로서는 1967년 파키스탄 지배계급의 억압과 문화 말살 정책에 항거하기 위해 최초로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1985년에는 제소르 지역에서 차루피스Charupith라는 문화단체가 포헬라 보이샤크에행복을 위한 행렬을 의미하는 아난다 쇼바자트라Ananda Shobhajatra’ 행진을 도입해 진정한 의미의 망갈 쇼바자트라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2) 김영집, "우울하고 무거운 광주의 봄", 무돌씨의 마르지 않은 샘-전문가 칼럼, http://webzine.gi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