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로 보기: 국내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현실과 과제

 

  

강슬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공연은 현장성과 순간성의 예술로, 공연의 막이 내리고 나면 관객의 기억에서만 존재한다. 이것은 공연의 묘미이자 관객이 공연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공연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공연예술 아카이브

그래서일까.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시기부터 국내 공연예술 기관에서는 아카이브 를 운영해왔다. 국립극장1950년 설립2009년 공연예술박물관 개소하고 아카이브 운영을 본격화했으며, 국립국악원1951년 개원1988년 국악 자료실을 개실하고 2012년 온라인 아카이브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르코 예술기록원은 1971년부터 공연예술 기록을 수집해왔으며, ‘공연 영상화’, ‘원로 예술인 구술채록’ 사업을 추진하며 아카이브를 확장하고 있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년 개관은 공연예술 분야에 특화된 아카이브는 아니지만, ‘아시아의 소리와 음악’, ‘아시아의 공연예술’ 등 주제 범주를 설정하고 관련 기록을 수집해왔다.

이는 모두 공공 영역의 아카이브로, 기관에서 행해지는 공연의 기록을 보존하여 기관의 활동을 증빙하고, 공연의 맥락 정보를 풍부하게 제공한다. 또한 한국 공연예술의 주요한 기록의 수집을 통해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예술적 지향, 사상을 확인하고, 나아가 공연 예술의 변화 원인과 과정을 밝히는 사료로 활용되길 바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는다.

반면, 아카이브의 운영과 관리체계, 이용자 서비스는 기관별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운영 목적, 소속 단체 유무 등 기관의 특성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소장 기록물의 최적화 관리와 서비스를 위해 각 기관이 찾은 해법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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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아카이브 소장 공연 기록물

 
 
 

공연예술과 기록물의 특성

다른 관점에서 보면, 전통적인 도서관, 박물관, 아카이브 기관이 범용적으로 따르는 기록또는 자료, 작품, 유물의 관리와 서비스 체계를 공연예술 아카이브에 단순히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는 공연예술의 특성에 기인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첫째, 공연의 현장성으로 인해 의도적으로 공연을 기록화하지 않으면 휘발되고 만다. 둘째, 공연은 기획에서부터 무대에 올리기까지 여러 단계의 제작 프로세스를 거치는데, 단계마다 중요한 기록물이 생산된다. 셋째, 하나의 작품이 여러 버전으로 재생산되고, 버전 하나가 여러 차례 공연되는데 이는 모두 개별 공연으로 간주한다. 마지막으로 공연은 연출가, 감독, 디자이너, 스텝 등의 제작진과 배우, 연주자 등 출연진 다수가 참여하는 집합적 예술로, 이들 모두가 기록의 생산 주체이거나 공연에 대한 맥락 정보를 제공한다.

따라서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공연을 사진과 영상 등의 매체에 고정하는 기록화의 행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 얻어지는 기록물 외에도, 다수의 과정 기록을 포함해야 한다. 또한, 작품과 작품의 버전, 공연 이력, 참여자와 출연진 등 포괄적인 정보가 관리되어야 한다. 기록과 기록의 맥락 정보들이 종합적으로 관리되고,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아카이브의 가치와 활용성이 높아진다. 하지만 이러한 특성은 공연예술계의 아카이브 도입 진입장벽을 높이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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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 공연 기록물 관리 구성도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공연을 포함한 콘텐츠 개발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의 관리 체계를 2023년 새롭게 개편하여 운영 중에 있다.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현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에만 총 6,607건의 공연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이 중 아주 일부의 공연만 아카이브로 보존된다. 공연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수많은 창작자의 기록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15한국 소극장운동 아카이빙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박조열 작가로부터 오장군의 발톱’, ‘토끼와 포수등 희곡 원고와 비평 활동 기록물 500여 점을 기증받았다. 이 기록물의 대부분은 1960대부터 1970년대에 생산된 종이 기록물로, 수집 당시 산성화가 진행되어 손을 대기만 해도 부스러질 정도였다. 작가 생전, 추가적인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 수집이 이루어지고, 당대 공연예술계의 현실을 살펴볼 수 있는 주요한 기록을 문화전당이 소장할 수 있게 된 것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박조열 작가의 사례에서 보듯 많은 원로 창작자의 기록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손상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아카이브에 편입되지 못한 기록은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현실을 충분히 짐작게 한다. 원로작가뿐만 아니라, 현재 활동하고 있는 소규모 극단이나 개인 창작자의 기록 역시 생산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된다면 우리는 공연예술 기록의 대부분을 웹상에서 단편적인 정보로만 접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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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 처리(2020)를 완료한 박조열 작가의 <오장군의 발톱> 초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산성화로 황변화와 지질이 약화된 기록물의 건식 세척과 보강, 탈산처리를 진행하였다.

박조열 작가의 기록물은 2024년 하반기 전시와 아카이브 홈페이지(http://archive.acc.go.kr) 공개를 목표로 정리 중이다.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저변 확대를 위한 모두의 노력 

20여 년이 넘도록 국내 공연예술 아카이브는 공공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공공 아카이브의 활동과 노력만으로 한국 공연예술사의 주요한 기록 전부가 보존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한다.

실제로 공연예술 분야는영화비디오법처럼 작품을 창작자로부터 의무적으로 제출받아 보존하게 하는 공식적인 기관과 제도가 부재하다. 설령 있다더라도 매년 1만여 건에 달하는 공연을 하나의 기관에서 기록화하고 수집하여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주도로 이루어진 공연예술 아카이브의 역할과 책임을 민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빠듯한 현장, 그리고 개인 창작자의 현실을 고려하여, 민간 아카이브의 운영과 유지를 위한 현실적이고 촘촘한 지원 제도가 뒷받침 되야한다. 

공공 영역의 아카이브도 오랜 운영 경험과 노하우를 민간에 전수하고, 소장기록의 상호 연계를 통해 운영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민간 아카이브는 공연예술 아카이브 저변을 확대시키는 중요한 , 공연예술의 발전에 기여하며, 공공 아카이브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시키는 순기능을 가져올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연극협회, 「월간 한극연극」 2023.11월호 

이호신, 「공연예술기록의 정리와 기술에 관한 담론」, 2016, 한국기록관리학회지

명지대학교 인간과 기록연구단, 『일상 아카이브의 발견』2012

설문원, 예술기록의 분류와 정리에 관한 연구, 2011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2023년 상반기 공연 티켓판매 현황보고서」,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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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슬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