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 도자, 광주에서 빚는 현대 도예 이야기
조은영(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자기는 중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해 한국, 베트남 그리고 일본에서 제작되어 아시아의 전통적 유산으로 여겨져 오며, 그 매체적 상징성으로 아시아를 내재한다. 한국에서는 10세기 고려시대부터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고려청자를 생산하였고 이후 분청사기 조선백자를 거치며 현재까지 유구한 도자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유럽에서는 18세기에서야 자기를 만들 수 있었던 사실을 감안하면, 동아시아의 도자의 역사가 매우 뛰어난 기술과 역사를 가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이러한 도예문화는 인류의 역사적 이동에 따라 전 세계로 확산되어 아시아 외부에서도 새로운 도자의 지형들이 포착된다. 이는 특히 인종과 문화의 융합이 활발히 일어나는 미국에서 다양하게 재해석되며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도예의 현대화가 가장 먼저 시도된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의 주요 중심지였던 유럽보다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미국으로 도예가들과 이론가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도예에 관한 활발한 논의와 담론이 생성되며 오늘날의 도예 생태계를 구축했다. 아시아에서 뻗어나간 도자가 다른 대륙으로 이주해 뿌리내린 양상은 마치 ‘도자의 이주’ 관점을 시사한다. 그리고 도자의 이주는 곧 인류의 이주 역사로 연결된다. 사람이 길을 떠나 이동하는 과정에서 도예 문화와 기술도 퍼져나갔다.
《길 위에 도자》 전시는 인류의 삶에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이주’라는 현상을 통해 아시아 외부의 현대 도예를 읽어보는 시도이다. 참여 작가 4인 스티븐 영 리(Steven Young Lee, 한국계 미국), 린다 응우옌 로페즈(Linda Nguyen Lopez, 베트남/멕시코계 미국), 세 오(Se Oh, 한국계 미국), 에이미 리 샌포드(Amy Lee Sanford, 캄보디아계 미국)은 이민 2세대 혹은 입양과 같은 다양한 이주 배경을 갖고 있다. 전시는 작가의 개인적 이주 서사에서 출발해 삶의 경험으로부터 빚어진 이주의 흔적을 살펴본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들의 작품은 문화적 충돌과 그에 따른 정체성 탐구의 맥락에서 발현되었다는 특징이 있으며 이 지점에서 이들의 작품은 아시아 내에서 발현된 도자예술과는 구별되는 이야기를 펼쳐 낸다.
전시의 여정은 작가들이 미국에서 광주로 이동하며 시작되었다. 도예는 그 어느 매체보다 특수성을 가진다. 흙을 치대는 단단한 작업대는 물론 물레 그리고 시유 도구들과 가장 중요한 소성 시설인 가마가 있어야만 비로소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진다. 광주 도자 레지던시를 위해 여러 기관과 접촉했고 최종적으로 조선대학교 미술대학과 협력해 함께 레지던시를 진행했다.
참여 작가 총 4명 중 3명이 광주를 찾았다. 처음으로 광주에 도착한 세 오 작가는 한 달가량을 머무르며 한국의 흙과 유약을 사용해 가장 많은 작품을 창작했다. 세 오는 인천에서 태어나 생후 9개월 때 미국으로 입양된 이후 이번 전시를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자연의 조형성에서 모티브를 얻어 작업에 녹여내는 작가는 첫 일정으로 광주 북구에 있는 화훼 단지에서 한국에서 식생 하는 나무와 꽃을 리서치 했다. 이를 광주 작업실이 되었던 조선대 도자디자인 대학원실 한편에 사진으로 붙여두고 영감을 받으며 물레를 찼다. 자신의 한국적 유산과의 연결 의지가 강했던 작가는 한국의 흙을 사용해 창작활동에 매달렸지만 이 과정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용하던 흙과 한국의 흙은 성질이 매우 달랐다. 토양이 다르므로 흙의 점성, 질감 등에 차이가 있었고 이를 맞춰가는 과정에서 매번 좌절을 겪었다. 미국에서 작가가 사용하던 흙은 부드럽고 성형 작업이 용이한 반면, 한국의 흙은 그에 비해 단단해서 항아리의 주둥이 부분을 꽃잎처럼 얇게 떠야 하는 작가의 작품 구현이 쉽지 않았다. 설사 완전하게 성형했다 하더라도 건조과정에서 이 부분에 갈라짐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그렇지만 인내를 가지고 재료적 실험을 거듭하며 마침내 적합한 흙을 찾았다. 이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옥빛 정원>, <달항아리의 순환> 그리고 <정(情)원)> 작품이 탄생했다. 특히 <정(情)원)>은 작가가 한국에 와서 느꼈던 정과 그 정을 느끼게 해준 사람들을 표상하는 작품으로 작가의 이주 서사의 배경 위에 덧입혀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세 오 <달항아리의 순환>, 한국 자기, 미국 자기, 핸드 페인팅, 와이어, 각 높이 10.16–20.32cm (20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세 오 <정(情)원>, 한국 자기, 미국 자기, 청자 유약, 각 높이 10.16–25.4cm(20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뒤이어 린다 응우옌 로페즈 작가도 광주에 도착했다. 린다는 2주 동안 작품을 완성해야 하는 시간적으로 도전적인 상황에 있었다. 린다의 작업은 유약이 아닌 흙 자체에 색소를 첨가한 색소지를 일정한 간격으로 말아내 비정형의 몸체에 하나하나 붙여 복슬복슬한 재질을 표현한다. 상대적으로 물레를 사용한 작업보다 손노동의 품이 많이 들어간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인 <먼지>연작뿐만 아니라 가구형 도자 작업〈더 나은 곳(스툴)〉 또한 도자 조작 하나하나를 퍼즐 맞추듯 붙여가며 완성한 것으로 작가의 정성스런 노동력이 가득 담겨있다. 도자 조각 중 동그란 곡선 모양은 어머니 쪽인 베트남의 직물 문양에서, 그리고 기하학적인 모양은 아버지 쪽인 멕시코의 문화를 반영한다. 작가는 이 과정을 자신의 정체성을 퍼즐 맞추듯이 찾아가는 과정과 같다고 표현한다. <먼지> 연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 또한 영어가 서투른 이민자 어머니와의 소통에서 발생하는 어려움 때문에 주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부터였다. 이렇듯 한 예술가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작가의 손을 통해 작품에 투영되어 관람객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2주가 숨 가쁘게 흘러가고 작가는 마지막 과정인 재벌(2차 소성)을 위해 작품을 가마에 넣고, 마지막으로 한국의 흙으로 작은 먼지 연작 1점을 성형하고 떠났다. 작가가 떠나고 이틀 후, 1200℃ 고온에서 구워져 화려한 색을 드러낸 <먼지> 작품들이 가마에서 나왔다.
린다 응우옌 로페즈 (좌) <선염 먼지 털복숭이(광주)>, 색을 입힌 자기, 투명 유약, 22×15×15㎝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우) <봄 하늘 선염 먼지 털복숭이(광주)>, 색을 입힌 자기, 투명 유약, 24×19×11㎝,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린다 응우옌 로페즈 (좌) <영원히(스툴)>, 도기, 색을 입힌 자기, 유약, 금 러스터, 그라우트(줄눈), 60×50×50㎝,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제작, 2024
(우) <더 나은 곳(스툴)>, 도기, 색을 입힌 자기, 유약, 금, 러스터, 그라우트(줄눈), 35×45×28㎝,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마지막으로 광주에 도착한 스티븐 영 리 작가 또한 린다와 마찬가지로 2주를 머물렀다. 오자마자 지역의 도재 상가에 들러 필요한 재료를 구매하고 한국의 도예 도구들을 탐색했다. 광주에서 스티븐은 그의 대표 연작 중 하나인 기형을 무너뜨리는 <해체>연작을 작업했다. 도자라는 매체는 형태의 완벽함과 어떤 흠도 용납되지 않는 매우 엄격한 미를 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티븐의 <해체>연작은 이러한 도자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 전면으로 저항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이민 1세대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국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특히 한국 음식에 익숙해 집에서도 종종 한국음식을 만들어 먹는다고 한다. 광주에 머무는 동안에도 스티븐은 한 끼 한 끼를 정성스럽게 먹고 싶어 하던 한식으로 채워나갔다. 이런 배경은 그의 작업에서 달항아리 기형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설명해주고 있다. 가운데가 볼록한 달항아리는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제작되던 형태로, 오늘날에도 한국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며 김환기 등 한국 작가의 작품에서도 영감의 원천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그에게 달항아리는 미국인이지만 동시에 한국인인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매개인 셈이다.
작가는 레지던시 기간 동안 달항아리를 성형하고 건조시키기를 반복했다. 초벌을 넣고 이틀 후 가마를 열었을 때 첫 번째 달항아리의 바닥 부분이 깨져있었다. 비록 의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이는 도자를 만드는 과정에서 예측할 수 없는 우연성을 활용하는 <해체>연작의 중요한 부분이다. 작가는 깨져 나온 형태를 오롯이 활용해 시유와 재벌에서 더욱더 모양을 과장한다. 비록 단기간 작업하느라 한국의 흙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한국의 유약을 사용해 곤색, 백색 그리고 미국의 유약을 사용한 홍색 도자, 총 3개의 도자로 구성된 <불완전한 긍지>작품을 창작했다. 이 작품은 세 가지 색으로 미국 성조기를 표상하면서 동시에 기형은 한국의 달항아리를 토대로 하여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작가의 이중적 정체성을 나타낸다.
레지던시 마지막 주에는 학교의 가마 여러 대가 쉴 새 없이 가동되면서 전시 개막 전날까지도 작품들이 나왔다. 개 중 한 점은 작가가 너무 맘에 든 나머지 조선대학교에서 도자기를 품에 안고 전시장까지 한달음에 왔다. 그리고 그 작품에 다음과 같이 작품명을 붙였다. <광주에서의 마지막 밤>.
스티븐 영 리 (좌) <불완전한 긍지>, 자기, 유약, 44×250×40㎝(3점),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우) <광주에서의 마지막 밤>, 자기, 유약, 43×34×34㎝,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지원 · 광주 제작, 2024
기획자로서 작가가 작업하는 과정을 근접하게 살펴보며 도자 작품 하나가 무사히 나오기가 확률적으로 희박하다는 것을 여실히 깨우쳤다. 온전하게 빚고 다듬고 가마에 넣어도 깨지거나 형태가 무너지거나 금이 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더욱이 익숙한 작업 환경, 날씨, 재료가 갖춰지지 않은 곳에서 도자를 만드는 일은 베테랑 작가에게도 도전 그 자체였다. 학교의 가마 온도 설정 또한 미국과 다르기 때문에 목표치의 온도에 단계적으로 다다르기 위해 수학적으로 시간을 계산하여 설정하는 등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이 매일매일 미션처럼 주어졌다. 하지만 모두가 무사히 전시개막을 해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을 가지고 큐레토리얼 팀, 참여작가, 조선대학교 협력팀이 한 몸이 되어 미션을 수행해나갔다. 덕분에 《길 위에 도자》는 무사히 탄생했다.
아시아에서 뻗어나간 도자가 발 디딘 곳에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나가고 다시 광주에서 이야기를 덧입고 관람객과 조우한다. 바쁜 와중에도 작가들은 시간을 내 강진을 방문하는 등 광주·전남의 도자를 경험했다. 물론 한식의 정수라고 손꼽히는 광주에서의 음식 탐닉에도 열심히였다. 이곳에서의 도자 문화, 기후, 음식, 사람에 대한 경험이 작가들이 걸어온 궤적의 한 부분이 되어 다시 또 창작의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길 기대한다.
조은영(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