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이 진보한 미래 사회에 대한 예술적 사유_ACC 예술극장 SF 연극시리즈 「거의 인간」&「대리된 존엄」

   

 

양수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프로듀서)  

 

   

근미래의 사변적 고찰과 예술적 상상력을 무대화한 SF 연극 두 작품 

많은 SF(Science Fiction) 작품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해 온 과학기술의 도약은 이제 먼 미래로 치부할 수 없는 가까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등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자 한 목적성을 넘어서 배양육’, ‘인공 자궁등 신적인 영역으로 여겨지던 생명 과학기술까지, 기술의 가속화된 발전은 개개인의 자기 인식 양상과 가치 체계부터 우리가 타인, 세계와 관계 맺는 상호 방식까지 우리를 둘러싼 사회 현상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인류세라는 신종 어휘의 등장처럼 현 인류는 미래 세대와 지구에 살고 있는 수많은 다른 종()의 운명에 거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로, 미래에 대한 선제적, 적극적인 실천과 개입을 요구받는다. 이런 사회 현상을 진단하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향후의 변화를 감지, 대응, 사유해 볼 수 있는 매체 중 하나가 바로 SF 장르이며, 이를 단순한 가상의 문학세계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SF 비평의 아버지로 불리는 다르코 수빈(Darko Suvin)은 SF의 주요 형식적 장치는 작가의 경험적 환경에 대안이 되는 상상의 틀이라고 정의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이해하고 있는 동시대의 익숙한 환경과 그에 대안이 되는 낯선 상상의 틀이 만나는 것이 바로 SF 장르인 것이다. 따라서 SF판타지의 장르와 대비되는 단순한 상상의 스펙트럼을 넘어 합리적이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여 앞으로의 우리 사회를 예견, 고찰하는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ACC 예술극장에서 처음 선보이는 SF 공연 시리즈는 이러한 근미래에 대한 사변적인 사고를 예술적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ACC 공연 레지던시 사업을 통하여 주제 연구 및 대본으로 개발된 두 작품은 모두 기술의 발전과 함께 다가온 인공지능, 기계와 공생하는 가상의 미래 사회 속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다. 급격한 기술변화와 함께 나타날 우리 삶과 사회의 현상을 예측해 보고 동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나누어야 할 사회적 담론과 수많은 인문학적 질문들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같이 사유해 보는 시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인공자궁대리모 산업’, 미래의 자본주의적 가치관 속 인간의 존엄이란  대리된 존엄

먼저 오는 712~13일 초연하는 대리된 존엄(작 문정연, 연출 최여림)’은 지난해 레지던시 쇼케이스를 통해 낭독극으로 관객과 처음 만났다. 인공 자궁으로 자녀를 갖는 것이 당연한 미래 사회에 돈 많은 낭만주의자들의 선호와 만족을 위해 인간 자궁을 제공하는 대리모 산업 속 주인공인 소녀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다. 자본주의의 특권층으로 앨리스에게 대리 임신, 출산을 의뢰하는 이용자 부부와 국제적 분업의 불평등 속 가장 소외된 약자임에도 부부에 대한 신의와 아기의 생명을 존중하는 대리모 앨리스의 관점이 작품 전반에 교차하며 서사를 이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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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된 존엄> 공연 사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이 작품은 근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를 차용하고 있으나 기술의 진보를 중점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급진적 기술 발전이 인간의 삶에 풍족한 혜택을 주는 가상의 미래 사회 속 여전히 존재하는 불평등한 국제적 분업 구조과 사회 현상에 주목하고, 새로운 자본주의 구조 속 소외되고 착취당하는 계층,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꿋꿋이 이어 나가는 앨리스라는 인물을 통하여 인간의 존엄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한다.

특별히 이 작품에서 주목할 부분은 모두의 삶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진보한 기술이 새로운 차별과 착취를 생산한다는 점이다. 실제 생명과학의 발달로 현실이 되어가는 인공 자궁의 기술은 여성을 임신과 출산이라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성차별이 해소되고, 대리모 문제 등을 해결해 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사회 변화가 결국 특권층에게는 더욱 생물학적 출산을 추구하는 문화를 조성하며 국제 자본주의 구조 속 최빈국은 생존을 위하여 대리모 산업에 뛰어들고 결국 합법적인 새로운 불평등과 차별, 착취가 발생하는 모습을 그린다.  

작품은 한 인물의 드라마를 넘어 기술이 빠르게 진보하는 사회에 인간이 더 나은 삶과 존엄을 가질 수 있을지, 권력 구조 속 인간의 욕망, 착취의 불평등을 피하고자 우리는 어떤 가치관으로 기술의 미래를 꿈꾸어야 하는지 사유하게 한다.

 
  
인공지능 시대에 여상이자 예술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인물들의 이야기  「거의 인간」

823~24일에 국립정동극장과 공동주최하여 선보이는 거의 인간(작 구두리, 연출 김수희)’포스트 코로나 시대 이후, 포스트 휴먼이라는 주제로 지난 2022‘ACC 공연 레지던시를 통해 대본이 개발됐으며 올해 국립정동극장 세실 창작ing’에 선정돼 공연화했다.

지난 5월 국립정동극장에서 초연을 선보이며 평단의 많은 호평을 받은 거의 인간은 인공 자궁을 통한 임신과 출산이 당연한 권리가 되고, AI 작가의 작품만 출판, 소비되는 시대, 공연장이 사라지고 예술을 역사의 한 장면(scene)으로 아카이브 하는 가상의 미래 사회 속 두 여성 예술가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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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인간> 공연 사진 ⓒ국립정동극장

     

무용 인간문화재가 되기 위하여 AI의 평가를 준비하며, 인공자궁으로 출산을 준비하는 무용수 재영과 본인의 글을 쓰지 않고 AI 작가의 멘토 역할을 하며 도태된 작가의 삶을 살고 있는 수현’, 두 인물의 서사를 중심으로 예술가이자 여자로서의 고뇌, 불안을 보여준다. ‘재영수현의 이야기들이 다층적으로 겹쳐지며 작품은 후반부로 갈수록 공통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기술이 진보하고 급진적으로 변화한 시대에 인간은 기계와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그리고 그 속의 인간과 예술의 근본적 존재란 무엇인가?’

인공지능의 예술창작은 현재까지 의식적 경험이 없는 제한적 행위에 그치며 인간과의 조력 없이는 불가하다고 평가된다. 하지만, 작품 속의 설정처럼 지속적으로 자체적 진화, 발전하는 초인공지능의 미래가 도달하면, 인공지능은 인간을 뛰어넘는 인지, 의식 능력을 갖추고 수많은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창조적 예술 행위를 수행하여, 더 이상 인간 예술가가 존재하지 않는 시대가 도달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불안하고 막막한 가상의 미래 현실 속에서 마지막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의지와 연대의 장면은 우리가 동시대에 다가오는 미래에 대하여 가져가야 할 실천적 방식을 단면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인다. ‘포스트 휴머니즘의 사상처럼 인류는 더 이상 지구상의 중심적 존재가 아닌 타 종()과의 상호작용, 관계성을 통하여 존재하는 혼종적 존재임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새로운 기술 시대의 변화를 감내하고 공존과 연대, 의지의 태도를 가지자고 작품은 제안한다

  

여성적 관점을 통해 들여다보는 미래 사회의 기술 진보와 권력 구조 

두 작품 모두 근 미래를 배경으로 여성 주인공의 관점으로 풀어가는 여성 서사의 작품이다. 또한 기술이 진보하고 발전된 사회의식의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위계 구조와 그 속의 변화된 여성상, 여전히 존재하는 차별의 행태를 보여준다.

최근에 상용화된 AI 서비스나 여러 영화, 문학 작품에서 인공지능에 성 정체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인공지능과 여성성에 대한 다양한 이슈들이 논의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로봇)이 인간의 보조적’, ‘수동적기능을 수행하는 경우 여성성을 부여하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인공지능 기술 분야에 젠더 이슈가 두드러지고 있다. 비인간 객체에게 성 정체성을 부여하는 기괴한 현상부터 문학, 영화에서 등장하는 여성성을 입은 AI 로봇의 정체는 동시대에 축적된 많은 데이터와 알고리즘, 불평등의 내재한 의식이 그대로 수면 위로 올라온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가 흐르면서 여성의 지위와 자기 결정권은 점점 존중받는 추세이지만, 여러 국가/지역에서 아직도 보수적인 태도로 낙태를 금지하는 등 합법적 성차별은 여전히 존재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동시대 현상을 대변하듯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번 두 작품은 인공자궁 태아 대상의 낙태법’, 상용화된 인공자궁과 대비되는 대리모와 같은 민감한 주제들을 주요 화두로 다루면서, 앞으로의 예측되는 사회적 변화들을 여성적 관점으로 고찰하고 예술적으로 해석하여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커뮤니티를 공공 담론의 장으로 끌어내고 포용과 공존의 태도가 필요한 이 시대, 여성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는 여성 서사의 이 두 작품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과제와 메시지를 던진다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 SF 작품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들 

흔히들 포스트휴머니즘의 시대라고 한다. 인류 중심주의를 추구하던 휴머니즘을 넘어 인간-비인간 간의 새로운 관계성에 대하여 고찰하고 역사적인 주류로 여겨졌던 백인, 남성성 중심의 위계 구조를 해체하여 탈-이분법적인 접근으로 공생을 모색하는 시대이다.

이러한 사상적 조류 속에서 두 작품은 미래 사회 기술의 발전이 젠더, 장애, 동물 등 환경적, 사회적, 정치적 대립과 차별을 극복하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을지, 서로의 존재 그대로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혼종의 존재로서 연대를 꾀할 수 있을지, 비인간과 우리가 어떠한 공진화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 많은 성찰의 질문들을 던진다

 

기술적 미래에 대한 상상은 새로운 가치관과 실천적 지향을 통해 새로운 삶과 관계의 방식을 발명하는 문제이며,

그러한 관계의 방식에 따라 인간-생명-기술의 관계적 네트워크가 갖는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이는 결국 좋은 삶이란 어떤 것이며, 인간이나 그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인문학의 오랜 물음과 맞닿아 있다.”

신상규,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삶의 재발명, 2020 中 

 

다가올 근미래 사회, 인간과 인공지능의 공생은 우리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펼쳐지게 될까. 두 창작자들이 담긴 시각의 작품을 통하여 우리의 앞으로의 자화상을 미리 바라보고 긍정적 미래를 위한 고찰의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참고문헌
프란체스카 페란도. 2021. 『철학적 포스트휴머니즘』. 아카넷 
이동신. 2020. 『포스트휴머니즘의 세 흐름』. 갈무리 
이동신. 2022. 『SF, 시대정신이 되다』. 21세기북스 
신상규. 2020. '포스트휴먼과 포스트휴머니즘, 그리고 삶의 재발명'. 「고등과학원 웹진 HORIZON(horizon.kias.re.kr)」.   
이상욱. 2020. '인공지능은 예술을 창작할 수 있을까?.  「고등과학원 웹진 HORIZON(horizon.kias.re.kr)」.  
 
 
 
 
양수연(국립아시아문화전당 학예연구사,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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