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체의 종류 |
주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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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어 |
독도 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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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표어 |
독도표석, 독도조사단, 한국산악회, 독도울릉도학술조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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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립/생몰/발생 |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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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혁/약력/사건개요 |
광복 후 1952년 1월 18일 한국 정부는 ‘평화선 선언(국무원 고지 제14호로 인접해양 주권에 관한 대통령 선언)’을 공표하였다. 이에 1월 28일 일본 정부는 독도에 대한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항의서를 전달한다. 2월 12일 한국정부는 일본의 항의서에 대해 반박 문서를 보내면서 한일 간에 각서 외교전이 시작되었다.
일본정부가 독도를 본격적으로 침입하기 시작한 것은 1953년 5월부터로, 총 24회의 침입이 있었다. 일본은 1953년 6월 27일 독도가 일본령 임을 표시하는 길이 270cm 폭 15cm의 표목을 설치했다. 여기에는 시마네현 오치군 고카무라 다케시마(島 根県穏地郡五箇村竹島)”라는 묵서(墨書)의 글귀가 적혀있었다. 경북 경찰국은 7월 3일 일본이 세운 1차 영토 표목을 철거했다.
일본은 8월 3일 독도에 순시선 ‘헤쿠라’를 파견하여 독도의 상황을 살핀 뒤 8월 7일 영토 표목을 독도에 다시 세운다. 2차 표목 역시 9월 18일 울릉 경찰이 제거했다. 10월 6일 일본은 순시선 ‘헤쿠라’와 ‘나가라’를 파견하여 세 번째 영토 표목을 동독에 설치했다. 이 표목은 한국산악회가 철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산악회는 1947년 최초로 독도 조사*를 실시한 이후, 정부 부처의 지원으로 1952년 9월 17일부터 28일 제2차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를 파견했다. 하지만 조사대가 독도 부근에 접근했을 때 미 공군기가 독도에 폭탄을 투하하는 바람에 상륙을 포기했다.
* (1947년 독도 조사) 1947년 4월, 독도에 불법 상륙한 일본 어민들이 한국 어민에게 총격을 가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과도정부는 독도 조사를 계획한다. 조사 주최는 민간단체인 조선산악회가 맡았으며, ‘울릉도·독도학술조사대’를 꾸리고 1947년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최초로 독도 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단은 8월 20일 9시 40분경 독도에 입도하여 오후 3시 30분까지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때 독도의 동식물 표본 채집, 목측에 의한 측량, 섬 지형 파악, 사진 촬영 등이 행해졌으며, 조사대 귀환 이우에도 독도의 위치, 면적, 지질, 기상과 해류, 생물, 식물, 역사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조사대는 과도정부와 조선산악회 공동 명의의 표목 2개를 동도에 설치하였다. 표목 중 하나는 ‘‘朝鮮鬱陵島南面獨島(조선 울릉도 남면 독도)’, 다른 하나에는 ‘鬱陵島.獨島學術調査隊記念(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 기념)’이라고 썼다.
한국산악회는 1953년 10월 세 번째로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대를 파견한다. 10월 15일 독도를 찾은 조사대는 일본의 세 번째 영토 표목을 뽑아내고, 그 전 해에 만들었다가 설치하지 못한 화강암 표석(가로 60cm, 세로 46cm, 폭 25cm)을 세웠다. 표석의 앞면에 “독도 獨島 LIANCOURT”, 뒷면에는 “한국산악회 울릉도·독도 학술조사단 Alpine Association 15th(Aug,) 1952”이라고 새겼다.
10월 23일 일본의 순시선 ‘나가라’와 ‘노시로’는 최계중에 한국산악회가 세운 ‘독도’ 표석을 철거하고 네 번째 일본 영토 표목을 독도에 세웠다. 이 표목은 1954년 5월 한국 해양경찰대 경비선이 철거하였다.
한국정부는 1954년 8월 24일 독도 경비초사 건립과 함께 독도 표석을 다시 설치하였다. 완성된 독도 표석의 앞면에는 ‘大韓民 國慶尙北道鬱陵郡獨島之標’라고 쓰고, 좌측 하단부에 ‘慶尙北道建立(경상북도건립)’이라고 썼다. 이 시기 한국은 본격적으로 독도수호 활동에 나섰고, 해양경비대를 파견했다.
한국과 일본의 독도를 둘러싼 공방전이 본격화된 1953년 일본은 6월 독도에 불법 상륙하여 영토 표목을 설치한 이례 4차례나 영토 표목을 설치하며 독도를 일본령으로 공식화하려 했지만, 한국은 이를 제거하고 대한민국 영토표석을 설치하며 독도수호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2005년 3월,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에 대응하여 경북도는 한국산악회가 1953년 세웠던 표지석을 설치하였으나, “리앙쿠르”라는 명칭이 논란이 되어 2008년 이를 철거하였다.
2015년 한국산악회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독도에 '독도 KOREA'라고 적힌 표석을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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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정보원 |
「1950년대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분쟁과 결과: 독도표석을 중심으로」(이소리,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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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CC 연계정보 |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953년 한국산악회의 울릉도·독도학술조사대의 독도 조사 활동을 기록한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 이 사진은 1960년대 광고 사진가로 이름을 알린 김한용 작가에게 수집한 것으로 김한용은 1953년 세번째 울릉도· 독도 학술조사대 전담 사진작가로 참여하였다. 김한용의 사진을 통해 조사 과정과 당시 세웠던 표석의 사진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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